‘나가수’가 왜곡시킨 대중가수의 정의
[매일경제 2011/05/25(수) 11:15]
MBC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가 대중가수를 새롭게 정의내리고 있다.
대중가수(Popular Singer)의 사전적 정의는 ‘대중들이 좋아하는 가수’다.
어떤 가수가 노래를 세상에 발표하고 이 노래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면
그는 대중가수의 정의에 부합된다.
대중가수의 정의는 어떻게 왜곡됐나
‘나가수’의 근본적인 논란 중 하나는
감동이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에 의해 순위가 매겨진다는 것에 있다.
순위를 정하고 '재미를 위해' 한명의 탈락자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대중가수'의 정의를 왜곡한다.
대중가수가 단순히 ‘대중들이 좋아하고 추종하는’ 가수에서
‘대중들에 의해 평가 검증되고 선택된 가수’로 바뀌게 됐다.
다시 말해 주체가 ‘가수’에서 ‘대중’으로 이동한 것.
실제로 대중음악사에서 음악은 소수의 권력에 봉사하는 위치에서
대중들에게 추앙받고 존경받는 위치로 진화하고 발전했다.
모차르트가 전자였다면 비틀즈는 후자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음악적 퀄리티와는 무관하게
오로지 뮤지션 스스로의 자기 정체성, 자의식과 깊은 연관이 있다.
실제로 ‘나가수’를 통해 재조명된 임재범의 영웅 신화는 애초 그렇게 쓰여졌다.
앞서 언급했듯 '나가수'에서 그 주인은 ‘가수’가 아니라 '대중'이라는 점은
가수라는 콘텐츠 자체를 왜곡시키기 시작했다.
그동안 자신의 음악적인 색깔과 개성으로
자기 정체성을 찾던 가수들이 소위 '대중들의 감동코드'를 좇는다.
한 20년차 중견가수는 “과거 MBC ‘일밤’에서 ‘게릴라 콘서트’를 처음 시도했을 당시
선배 가수들의 분위기는 냉담했다”며
“가수가 대중을 이끌어야지
대중을 좇고 구걸을 하면 되겠냐는 설명이었다”고 말했다.
물론 순기능도 있다.
방송이라는 영향력 있는 매체가 이들을 비추고 더 많은 대중들을 끌어올 수 있다면
이는 상업적인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는 마케터의 역할이지 가수본인이 몫은 아니었다.
방송은 어떻게 가수를 왜곡하나
‘나가수’는 일방적으로 추앙받던 '영웅'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비춰 그들을 지상으로 끌어내린다.
‘나가수’ 카메라는
가수들이 대기실에서 초조해 하고 무대로 내려올 때 다리가 풀리는 모습, 긴장해 손을 떠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이는 이 프로그램의 주체가 가수가 아니라 방송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실제로 방송의 목적은 음악의 목적과 전혀 다르다.
음악이 3~4분의 짧은 시간 동안 응집된 카타르시스를 쏟아내는 방식으로 감동을 주는 것이 목적이라면
방송은 이야기, 즉 과정 자체를 보여주는데 목적이 있다.
방송은 가수가 아니라 시청자, 정확히 말해 시청률이 우선이다.
방송과 음악은 이는 전혀 별개의 영역인 듯 보이지만
두 주체의 의도가 완벽하게 같을 수 없기에 문제가 생긴다.
특히 방송이라는 콘텐츠가 비추는 스토리(사생활이나 주변 상황들)에 의해
가수의 노래는 어떤 방식으로든 왜곡돼 전달될 가능성이 크다.
임재범의 ‘너를 위해’가 암투병으로 힘든 생활을 겪은 아내를 향한 ‘애가’(哀歌)가 되고
‘여러분’이 대중들을 향한 임재범의 그리움을 고백하는 내용으로 곡해된다.
이는 방송자체 볼 때는 매우 감동적일 수 있다.
방송의 완성도 역시 높아진다고도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임재범의 의도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이 같은 방송의 스토리 포장 과정은 때론 음악작품 자체 대한 심각한 훼손이 될 수 있다.
무대와 관객들 사이에 방송이 끼어들어 생기는 결과다.
실제로 감동을 강요하는 듯 한 ‘나가수’의 편집 방식은 일부 시청자들에게 불만을 사고 있다.
결국 ‘나가수’에서 가수는 방송의 도구 위치에 놓인다.
여기에 더 이상 독립된 콘텐츠로서의 가수도, 영웅신화도 설 자리가 없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이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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